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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은 별안간 소맷자락 속으로부터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까무잡잡하면서도 반짝반짝
윤기가 도는 손바닥을 활짝 벌렸다.  과연, 그 손에는 단지 한 개의 손가락밖에 없었다. 물론
단혼지 일견사라고 불리는 허비 노인에 틀림 없었다.  자운 아가씨는 갑작스레 극도의 불안
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는 비록 천하제일방의 명성이나 세력이 혁혁한 바 있
다고 해도 몇 차례의 사실이 한 가지 뚜렷한 점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천하제일방의
방주 무영객이 봉명장을 어디까지나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삐쩍 마른
일견사라는 노인의 말투를 들어 보면, 그는 부방주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이 이만저만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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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는 점을 쉽사리 간파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 일견사란 노인은 우리 아버지와
사생 결단을 하려고 덤빌 것이 아닌가?’  이때 돌연, 흥백 아가씨가 깔깔대고 자지러지게 웃
었다. 한참 웃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호호호. 그러게 말이오! 노인 같으신 분의 현재
의 무술 실력이나 재간으로 말하면, 방주님을 제외하고야 우리 방 안에서 누가 따를 수 있
겠어요? 그러니 노인 같으신 분을 빼놓고야 또 누가 부방주의 자격이 있겠어요?”  일견사 허
비는 자못 기분이 상쾌한 모양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웃음소리가 듣는 사람의 귓전을 찌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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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같아서 가시가 돋쳤다. 그것은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할 만큼 일종의 간계(奸計)를 감춘 웃
음소리 였다.  “해해해. 이건 내가 결코 지나친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오. 사실 성수신검
정기봉이란 자는 그의 쟁쟁하다는 명성이 헛되이 전해진 데에 불과하거든! 십여 년 동안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바깥 세상을 등지다시피하고 살아왔더니, 범이 없는 산 속에서 원숭이
란 놈이 패왕 노릇을 한다는 격으로, 세상 사람들이 정기봉이란 자를 하늘처럼 높이 떠받
들어 준 데에 불과하단 말이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흥! 그까짓 놈쯤이야. ”  홍백 아
가씨도 한바탕 자지러지게 깔깔대고 웃었다.  “오호호호 호호! 이 문제에 관해서는 노인께
서도 잠시 참고 견디시는 게 좋을 거예요! 우리 방주님의 성미를 잘 아시면서 ‥‥‥‥”  방주란
말이 한 번 나오자,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우쭐대던 일견사라는 노인도, 왜 그런지 움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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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풀이 죽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흥! ”  두 눈을 아래로 깔고 가볍게 코웃음을 칠 뿐,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자운 아가씨는 일견사 허비가 자기의 존재를 알은 체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싶어서 적이 마음을 놓았다.  한편, 홍백 아가씨가 자기를 모른 척하
는 것은 반드시 허비라는 이 괴상한 늙은 괴물을 꺼려서 그런다는 눈치도 알아챌 수 있었다.
  이편에서 먼저 자진해서 그들을 알은 체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잠자코 식사를 끝내
면서 내심 생각했다.  ‘이런 시비 곡절이 많은 곳에서는 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이따위 시시한 일을 내가 알은 체해서 뭣하랴?’  자운 아가씨가 음식 값을 치러 주고
막 몸을 일으켜 자리를 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