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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지만 않았다면, 벌써 자운 아가씨를 찾아서 줄달음쳤을 것이다.때는 밤 한 시쯤.

신계 성안에는 깊은 밤의 장막이 칠흑같이 덮여 있었다.소세옥은 자운 아가씨가 묵

고 있는 여인숙을 찾아서 단숨에 달려갔다.방 앞에 있는 들창 밑으로 바람처럼 가볍

게 살살 다가서 봤으나 방안에서 새어 나오는 등잔 불빛도 볼 수 없었다. 귀를 기울이

고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들어 왔다. 쌔근쌔근하는 가느다란 여자의 숨 소리가 간신히

들려 나왔다.소세옥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자운 아가씨는 봉명장으로

다시 돌아가기 싫다고 했었다. 비록 아가씨는 왜 돌아가기 싫은지 명백히 말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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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의 곁을 떠나기 싫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소세옥은 누

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내심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긴 한숨을 땅이 꺼질 것같이 내쉬었다.과거에 그는 성수신검 정기봉에 대해서 극도

의 의심을 품고, 또 자운 아가씨의 오빠 정여룡에 대해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자운 아가씨와 얼굴을 마주 대하려고 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제 와서

는, 성수신검 정기봉에 대한 의심은 말끔히 풀어졌다.단지 정여룡이 악독하고 잔인하

게 채찍질을 해서 자기 얼굴을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은 과거의 비인간적인 소행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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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할 때, 역시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자운 아가씨를 마주 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

다.그런데도 인간의 운명이란 소세옥과 자운 아가씨 사이를 끊을 래야 끊을 수 없게

쇠사슬로 얽매어 놓은 것 같았다.무학의 집안에서 자라난 다정 다감한 아가씨가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치려는 열렬한 애정.그 앞에, 소세옥이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어

찌 모른 체할 수 있을것이냐.그러나 자운 아가씨의 소세옥에 대한 애정의 도가 깊어지

면 깊어질수록, 소세옥은 점점 더 아가씨를 정면으로 대하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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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사랑이란 자기가 사랑하는 사

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내 한 몸이 죽든 살든,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일이 아니냐?”어떤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 한, 나의 이 추악

해진 얼굴을 어떻게 고쳐 볼 수 있을 것이랴!’소세옥의 심정은 착잡했다.그는 긴 한숨을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호도 틀립없이, 축 늘어진 침상의 휘장 틈, 베갯머리 가

에 자운 아가씨의 봉검(鳳劍)의 칼자루 손잡이가 밖으로 비